“쌍방향 교육에 미래 있다” 대학가 플립러닝 확산

-서울대·연세대 등 명문대 속속 도입
-토론·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수업
-생각의 힘 길러 창의·사고력 발달
-학생들 “성장하는 기분 들어 만족”

 

플립 러닝을 도입한 연세대 ‘마케팅 매니지먼트’ 수업에서는 장대련(사진 왼쪽) 경영학과 교수와 학생 간 질의응답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저는 공학을 전공해요. 여기 있는 경영학도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죠. 인턴십 경험이 있지만, 요즘 다들 이 정도는 하니까 굳이 부각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하루 방문자가 수천명 넘는 블로그를 운영해본 경력이 제 장점입니다. 블로그 마케팅도 가능하니까요.”
지난 2일 오후 1시 연세대 경영관에서 진행된 ‘마케팅 매니지먼트’ 수업 강의실엔 활기가 넘쳐 흘렀다. 점심때가 갓 지난 시각이지만, 20여 명 수강생 중 조는 사람 하나 없었다. 장대련 경영학과 교수가 “자신을 브랜드로 만든다면 어떤 점을 부각해야 남과 차별화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학생들이 저마다 의견을 쏟아냈다. 누군가는 “달변가의 면모를 강조할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회 경험이 풍부한 점을 내세울 것”이라고도 했다. 학생들의 ‘자기 마케팅’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어 질문을 꽂았다. 주입식 강의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강의실과 판이한 풍경이었다. 이른바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명문대에 자리 잡는 플립 러닝
대학 강의실에 플립 러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플립 러닝은 교수가 제공한 10분 안팎의 온라인 강의를 보며 학생이 수업 전에 미리 개념을 숙지하고, 오프라인 수업은 주로 토론·팀 프로젝트 등으로 진행하는 교육 기법이다. 1990년대 미국 하버드대의 에릭 마주르 교수가 온라인을 활용한 초창기 모델을 개발했고 2007년 미국 존 버그만 교사가 플립 러닝이라는 현재 모델을 내놓은 뒤 점차 퍼졌다. ‘뒤집다’라는 뜻의 영단어 ‘flip’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교실’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서울대·연세대·고려대·카이스트·유니스트 등 한국 명문대가 앞다퉈 이를 도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가 일찌감치 쌍방향 교육의 필요성을 감지했다. 2009년 20여 개 강의에 플립 러닝을 도입한 이후 점차 비율이 늘어나 2017년 현재 전체 강의의 25%(120여 개)에서 플립 러닝을 한다. 학교 측의 교육 개혁 의지가 강해 교수 연수·조교 비용 보조 등 다방면으로 지원한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는 2012년 3개 강의로 출발해 이번 학기에 80여 개 과목이 플립 러닝을 활용 중이다. 이태억 카이스트 교육원장은 “일방적 지식 전달을 최소화하고 구성원 간 상호작용을 극대화함으로써 학습 효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최근엔 연세대가 빠르게 변화 중이다. 2015년 플립 러닝을 도입한 후발 주자임에도, 현재 총 36개 수업(누적 95개)에서 플립 러닝을 진행한다. 올해 처음 플립 러닝에 도전장을 내민 장대련 교수는 현장감을 높이고자 대형마트를 직접 방문해 영상을 찍고, 해외에서 학자 인터뷰를 촬영해 최신 이론을 소개할 정도로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장 교수는 “젊은 세대에겐 시각 콘텐츠의 전달력이 높기 때문에 영상을 다채롭게 촬영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수업에 앞서 학생들은 동영상 강의를 보고 와야 한다.

 

◇주입식 강의로는 창의력·협업력 못 키워
대학이 플립 러닝에 주목하는 건 주입식 강의로는 미래형 인재를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글로벌 리더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주입식 교육은 이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신창호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기존 수업으로는 창의력·협업력을 높이기 어렵다.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는 지금 시대에 과거 교육 방식이 적합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교육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은 ‘질문하는 능력’이다. 질문을 하려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자기만의 생각을 해야 한다. 이것이 창의력 발달로 이어진다. 플립 러닝을 경험한 교수들에 따르면 처음엔 입시 교육에 길든 학생들이 질문하기를 꺼려한다. 우등생일수록 ‘모른다’는 걸 드러내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주로 질문하는 쪽은 교수다. 그러다 3~4주가 흐르면 학생들 사이에서 질문이 나오기 시작한다. 김영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플립 러닝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얼마나 질문에 목말라 있는지 알게 됐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고 했다. 범수균 유니스트 교수학습센터 팀장은 “플립 러닝을 한 번이라도 거쳐 간 학생들은 다른 수업에서도 문제해결력이나 자기주도학습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학생 반응도 좋은 편이다. 지난해 카이스트 강의 평가에선 플립 러닝을 활용한 강의들 평균점이 5.0 만점에 4.2점을 기록해 전체 평균(4.1점)을 넘겼다. ‘다시 플립러닝 수업을 듣겠다’고 답한 학생도 70% 이상이었다. 김미향(연세대 영어영문학과 4년)씨는 “플립 러닝 강의는 주어진 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하고 준비할 것이 많다. 하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기분이 들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상 제작과 토론에 대한 교수들의 부담감 때문에 확대가 쉽지만은 않다. 플립 러닝을 진행한 교수들은 “일반 강의보다 3~4배 넘는 품이 든다”고 했다. 카이스트도 본래 목표는 2017년까지 전체의 30%를 플립 러닝으로 전환하는 것이었으나, 지난해 기준으로 7% 안팎에 그쳤다.
모든 수업을 플립 러닝으로 진행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현섭 수업디자인연구소장은 “플립 러닝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부담이 큰 모델이므로 꼭 필요한 과목만 진행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시험에만 최적화한 수업에 익숙한 학생이 많아 강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점도 부담”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4/2017051401113.html